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2006/ 장진영/ 김승우)
처음 극장에 걸릴 때부터 왠지 이 영화는 보고 싶었었다. 사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싱글즈 같은 가벼운 로멘틱 코메디 영화였다. 봐야지….라고만 생각하다가 몇일 전에야 겨우 봤는데, 내 기대는 아주 멋지게 벗어나고야 말았다.
연하와 영훈
연하와 영훈 커플은 강호동 고기 먹듯이 날라다니는 욕과 구타 섞인 싸움만 빼면, 누구 보다도 서로 사랑하는 커플이다. 이들 둘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만 보았다면, 분명 행복한 커플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운명은 그들이 그냥 서로 사랑하게 놔두지는 않는다.
연하의 직업은 술집 아가씨이다. 영훈은 어머니의 고기집에서 일한다. 직업만 보면, 영훈이가 더 번듯(?)하다. 하지만, 영훈이에게는 연하보다 1년을 더 사귄, 약혼녀 수경이도 있다. 연하는 영훈이 바람을 피우는 것임을 알면서도 영훈을 사랑하고 챙겨준다. 영훈이는 아파도, 배가 고파도, 그리고 음음음이 하고 싶어도 연하를 찾는다.
물론 이들의 관계의 끝은 뻔하다. 영훈은 수경이와 결혼한다. 연하는 영훈에게 왜 자기와는 결혼할 수 없는지 묻지만, 연하 자신도 그 이유를 안다. 결국 연하는 영훈의 “첩이나 세컨드”로라도 남고 싶어 한다.
연하
비가 마구 쏟아지는 어느 밤, 연하는 가게 동료들과 영훈이네 가게에 들어선다. 영업이 끝났다는 말을 무시하고 들이 닥친 연하는 영훈이에게 “나 아저씨 꼬시려고 왔어요.”라는 도발적인 멘트를 날려준다. 연하는 또 가게 아가씨들을 괴롭히는 천상무를 위협하기도 하고, 영훈을 때리는 천상무에게는 “발광”하며 대든다. 이런 터프하고, 무서울 것 없는 아가씨지만, 연하는 영훈과의 헤어짐 앞에서는 한없이 무너져 버린다. 모두들 영훈의 결혼식에 그녀가 나타날까 두려워 했지만, 그녀는 영훈의 행복을 빌어 준다. 그녀의 영훈에 대한 마음은 그냥 불장난 하는 것 보다 훨씬 강하며, 순수하다. 신혼여행을 가서 전화한 영훈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난 네가 수경이 그 년이랑 xxx하는 거 상상해도 하나도 질투가 나질 않어. 하지만, 니가 그 년이랑 누워서 다정히 얘기할 것을 상상하면 아주 돌아버릴 것 같어!”
어느 누구나 예상하듯이, 결국 그녀는 혼자 남겨지고야 만다.
영훈
영화상에서도 나이 꽤나 먹은 것 같은데, 노는 폼은 아직 애어른이다. “끼리끼리”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친구들과 함께 질펀하게 놀기를 좋아한다. 세상일에 대한 흥미도, 또 정말로 사랑하는 연하를 선택할 용기도, 그렇다고 양지에 있는 약혼녀 수경이를 보내줄 배려도 없는 남자다. 솔직히 연하가 수경에게 둘 사이를 말해버린 직후, 연하에게 달려가 마구 때리는 장면에서는 그의 비겁한 모습에 치를 떨게 만들었다.
그가 차일피일 미뤄서 4년동안 미루던 수경과 결혼하게 된 이유도 웃긴다. 연하와 영훈의 사이가 보통사이가 아닌 것을 알게된 영훈의 어머니는 일방적으로 수경이와의 결혼식을 잡고, 혼인신고 마저 해버린다. 영훈은 어머니에게 짜증을 내긴 하지만, 그것을 거스를 용기는 없었다. 생각해 보면 수경이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연하를 더욱 깊이 사랑한 것은 분명하다.
영화
영화를 보면서 초반에는 사실 너무 오바스럽게 나오는 욕과 (내가 좋아하는 장진영이 분한) 연하을 우악스럽게 때리는 영훈의 모습이 날 불편하게 만들었다. 굳이 비교한다면, “나쁜남자”라는 영화를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물론 그 강도는 현저히 낮지만) 이것은 감독의 의도와 오바스러운 대본의 영향도 있겠지만, 이 둘의 관계가, 영화에서라도 이루어 지길 바랄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는 이루어지기가 정말 힘들 것 같은 관계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행복한 순간들의 틈에 강한 느낌의 욕을 끼워 넣어 이 둘의 관계가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인지를 암시하려 했다면, 지나친 분석일까? 영화를 보고나서 나는 분명 기분이 불쾌했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못만들어서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약간의 극단적인 과장이 섞인 화면을 통해, 사랑이 전부가 되지 못하는, 약간은 암내나는 현실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면서는 영훈의 비겁함을 욕했지만, 만약 내가 저런 상황이라면, 나는 연하를 쉽게 택할 수 있었을까? 결론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만,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않고,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쉽게 선택하지는 못할 것 같다. 우리는 Pretty Woman의 줄리아 로버츠와 리차드 기어의 해피엔딩을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실제로 나에게, 내 주위 사람에게 벌어질 때에는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연애, 가끔은 견딜수 없을 만큼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