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놓고 최근에야 읽은 책인데
자리잡고 앉아서 독후감 쓸 시간이 없어서 일단 글만 올려 놓는다. 나중에 업뎃 예정
* 전체적으로 클로테르 라파이유의 insight에는 동의함. 청년기적인 미국으로 많은 부분을 설명하는 것은 흥미로웠음.
* 하지만 약간은 유러피언의 시각이 담겨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을 듯.
* 사놓고 최근에야 읽은 책인데
자리잡고 앉아서 독후감 쓸 시간이 없어서 일단 글만 올려 놓는다. 나중에 업뎃 예정
* 전체적으로 클로테르 라파이유의 insight에는 동의함. 청년기적인 미국으로 많은 부분을 설명하는 것은 흥미로웠음.
* 하지만 약간은 유러피언의 시각이 담겨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을 듯.
오늘 친구가 부탁한 책을 빌리러 오랜만에 중도 서가에 갔었다.
도서관 서가의 냄새….
이 냄새를 맡으면 항상 어릴 적 사촌형한테 물려 받았던 소설책 전집이 생각 난다.
둔촌동 살 때(“국민학교” 다닐 적) 작은 방을 내방으로 쓰고 있었는데,
책상을 놓으면 이불 필 조그만 공간 밖에 남지 않은 방이었다.
책상 밑에는 조그맣게 책이나 물건 따위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거기에 소설책 전집을 놓고 누워서 잠들때 까지 읽곤 했었다.
서른이 된 지금, 여전히 책은 좋아하지만 예전처럼 그렇게 몰두해서 읽지 못하고 있다.
읽는 책의 종류가 많이 바뀌어서 일 수도 있고,
TV나 인터넷, 게임이 주는 자극적인 재미에 중독되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늘처럼 이렇게 오래된 책의 냄새를 맡은 날에는 어릴 적처럼 책에 완전히 몰두해서 하루를 보내고 싶어진다.
ps
문득 생각난 건데 국민학교 2학년 때부터인가 우리집에서는 어린이들(나랑 내 동생)은 7시 이후에 TV 시청이 금지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그 때 더 책에 빠졌었는지도 모르겠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최근에 책을 사 놓고 다 읽지를 못해서(라고 쓰고 “읽지를 않아서”라고 읽는다) 책 사는 것을 자제하고 있었는데, 지난 주에 연구실 동생의 생일 선물로 책을 사러 YES24에 들어갔다가 확 끌려서 사버리고 말았다. 이 놈의 책 뽐뿌… 그러고 보니 새해 기념으로 읽으려고 사 놓은 책 목록도 한번 정리해야겠다.
(선물로 산 책은 “생각하는 프로그래밍”. 원래 Programming Pearls라는 제목의 글들을 묶은 책의 번역본인데. Pearls랑 컴퓨터 언어 중 하나인 Perl가 헷갈려서 “진주 같은 코드 만들기”였던가 라고 번역해 놓은 문장을 보면서 비웃다가 망신 당한 일도 있었다. 또 같이 산 책은 내 wish list에서 오랫동안 방황하고 있던 컬쳐 코드.)
아무튼, 이 책에 끌렸던 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이유는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사람이 쓴 글들은 읽는 재미가 쏠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의 장편 소설을 하나도 읽지 않았다. DW군이 특히 좋아하는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와 같은 단편집과 집의 책장에 꼽혀 있던 수필 집(여기서는 자신이 편한 이발사에게 기차를 타고 가 이발을 하는 자신을 설명하는 글이 있는데, 익숙함의 편안함이랄까? 그런 사소한 일상을 차분히 풀어 내는 글이 참 좋았었다.)이 아마 전부였을 것이다. 물론 그의 유명세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그보다도 그의 글에는 묘하게 끌리는 매력이 있어서가 더 큰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이유는 마라톤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작년에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10Km 마라톤에 참가했던 기억을 돌이켜 보면, 달리기는 어쩌면 나에게도 하루키씨에게 그랬던 것처럼 잘 어울리는 운동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달리기를 시작했던 이유 중 하나가 나 스스로에게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였고, 또 건강은, 아주 최악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기는 습관이라는 것은 매일 매일 목표를 두고, 그 목표를 어떻게든 달성하는 것이 백수라서 띵가띵가 놀고 있는 나에게 필요하다는 데서 중요했고, 어디 특별히 아픈 데는 없었지만, 계속해서 불어나는 체중과 60대 할아버지에게 버금가는 지구력은 이대로 가면 곧 아픈 곳이 생길 거라는 확신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달리기와 글쓰기라는 하루키씨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해온 일들을 통해서 하루키씨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내용으로 구성 되어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의 즐거움 중의 하나는 내가 느꼈던 것들을 남도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아내는 것이었다. 달리기를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해본 혹은 해보려고 한 사람은 알겠지만, 이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고, 육체의 칭얼거림을 정신이 끊임없이 얼러줘야 하는 운동이다. 작년에 마라톤(비록 10km짜리지만)을 준비하면서 어느 정도 달리는 것이 괘도에 올랐음에도 매번 운동을 하러 나가려고 하면 갑자기 발목이 아프고 무릎이 아프고는 했었다. 하지만 결국 조금씩 살살 뛰어가다 보면 칭얼거리던 발목과 무릎은 이내 포기해 버리고 만다. 이와 똑 같은 얘기를 하루키씨의 글에서 만나게 되자, 동질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책의 초중반에는 형편이 안되어서(역시 이렇게 쓰고 귀찮아서 라고 읽는다) 좋은 구절 몇 개를 표시해 놓지 못하고 지나쳤는데, 뒷 부분은 어제 읽으면서 표시 해 놓았다. 공유하고 싶어서, 그리고 나 스스로도 기억하고 싶어서 여기에도 옮겨 본다.
무리를 해서 계속 달리는 것 보다는 어느 정도 걷는 쪽이 현명했을지도 모른다. 많은 주자들은 그렇게 하고 있었다. 걸으면서 다리를 쉬게 한다. 그렇지만 나는 한 번도 걷지 않았다. 스트레칭을 하기 위한 휴식은 착실하게 취했다. 그러나 걷지는 않는다. 나는 걷기 위해서 이 레이스에 참가한 건 아니다. 달리기 위해 참가한 것이다. (중략) 아무리 달리는 스피드가 떨어졌다 해도 걸을 수는 없다. 그것이 규칙이다. 만약 자신이 정한 규칙을 한 번이라도 깨트린다면 앞으로도 다시 규칙을 깨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레이스를 완주하는 것은 아마도 어렵게 될 것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p. 172
만약 내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 넣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p. 259
사실 달리기를 계속 (뜨문뜨문) 해 오면서 내가 이런 책을 써보고 싶었다. 내가 달리기에 대해서 느끼는 긍정적 감정들과 그로 인한 내 생활의 변화, 그런 것을 말이다. 하지만, 하루키씨에게 선수를 뺏겨 버렸다. 은근히 이 책이 유명해지지 말기를 살짝 바라고 있었는데, 오늘 이 글을 쓰면서 다시 yes24를 가보니, 역시 헛된 희망이었다. 머… 그래도 틈틈히 준비는 해 두련다. 혹시 아나 내가 지금 보다 조금 더 완성되었을 때에, 나도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될지. 그렇다면, 누가 읽어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자랑스러운 책이 될 테니까.
아닌 척 해도 천상 공돌이인 내가 조금이라도 문학적인 소양을 쌓기 위해서 그나마 꾸준히 하는 것은 매년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사보는 것이다. 2003년도에 우연히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 든 이후로는 매년 꼭 사서 보고 있다. 올해는 솔직히 조금 일정이 빠듯해서 한번에 다 읽거나 하지는 못하고, 대신 연구실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서 몇일만에 다 읽어 버렸다.
올해의 대상은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인데, 아주 재미 있게 읽었다. 수상 이유 등에서 설명하는 “절제의 미를 아름답게 사용했다”고 하고 있듯이 “사랑을 믿다”는 읽는 사람에게 많은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을 허락한다.
지금까지 내가 재미 있어 했던 많은 글들은 보통 “데미안”과 같이 세밀한 심리 묘사가 있다던가 적당히(!) 긴 분위기나 장면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가 있던 글들이었지만, 이 글은 마치 그다지 대사가 없어도 많은 얘기를 하는 영화를 본 것과 같은 재미를 선사했다. (적절한 영화를 떠올리려고 노력했지만, 고유명사 따위를 기억하는데 잼병인 나에게는 역시 무리였다. –;)
이번에는 “목신의 어떤 오후” 하나 빼고는 모두 재미있게 읽었다. “목신의 오후”는 그 서사와 묘사가 너무 길어져서 처음에 느꼈던 재미가 끝에서 많이 반감되었었다. 하지만 이건 피곤한 상태에서 지하철에서 서서 읽었던 주변환경의 영향일지도 모르니 편견을 가지지는 마시길.
간단히 대상과 우수상 수상작들에 대한 짧은 코멘트를 덧붙여 보겠다.
권여선 “사랑을 믿다” (대상작)
권여선 “내 정원의 붉은 열매” (수상자 선정 대표작)
대학 새내기 때 만났던 선배에 대한 추억을 30대가 된 저자가 회상하는 내용. 비록 나의 새내기 시절보다도 더 이전의 일이지만, 나도 저자와 같이 “나이 먹은 위치”에서 “풋풋했지만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그 시절에 빠져볼 수 있었다.
하성란 “그 여름의 수사(修辭)”
한여름에 맞은 할머니의 초상을 둘러싼 면면들에 대한 솔직한 묘사
김종광 “서열 정하기 국민투표 – 율려, 낙서 공화국 1″
기발한 상상력으로 현재 문학 세태에 대한 풍자와 해학을 펼침. 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약간 진부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윤성희 “어쩌면”
죠스바를 먹던 소녀들의 사후 세게 이야기. 가볍게 풀었지만, 잔향이 조금은 남는 소설
천운영 “내가 데려다 줄게”
약간은 몽환적인 서사(?). 하지만 너무 늘어지지 않게 긴장시키는 요소들이 있어 더 좋았던 글.
박형서 “정류장”
내가 좋아하는 성장과 심리를 다루는 글. 이 글은 주인공의 성장 이 후의 심리적 갈등에 대한 묘사가 조금 더 길어
박민규 “낮잠”
노년의 신사가 요양원에서 겪는 이야기를 담백하게 담아낸 글. 맨 마지막 글이었는데다가 피곤했지만,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
하도 유명하다고 해서 읽어보게 된 책.
사실 얼마전까지는 관심도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스스로를 많이 변화시킨 친구를 만난 이 후에 관심이 가서 저번 지름신 강림하실 때에 같이 구매했었다. 가장 먼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그냥 얇아서. ^^;
사실 초반에는 책을 읽다가 관두려고 했었다. 몇 가지 좀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는데,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하지만, 중반 이후에는 익숙해져서 그만두지 않고 다 읽었다. (사실 올해부터는 무조건 끝까지 읽자는 결심을 한 이유도 있다.)
책의 핵심 메시지를 요약하면
생각이 너의 인생을 지배한다. 너의 인생은 니가 생각하는 대로 이뤄진다.
라고 할 수 있다. 머 틀린 말은 아니고, 게다가 이런 저런 책에서도 이미 많이 나왔던 얘기다. 이 책은, 독자가 의심하지 않고 믿도록 하기 위해서, 사이비종교 집회에서나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사례들을 든다. 아픈 사람이 나았고, 시력이 좋아졌고, 부자가 되었다는 얘기들은 오히려 책의 주장에 대한 반사적인 거부감이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기적처럼” 불치의 병을 이겨낸 사람들의 얘기를 종종 듣고, “강한 의지”로 딸의 결혼식을 보고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이건 개인적으로 아는 사례이다.) 또,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큰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감탄하고, 그들이 객관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고민한다.
비슷한 경우는 내가 좋아하는 책 “데미안”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데미안은 이렇게 얘기한다. “의지를 어떤 것에 집중하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결국 이 책은 계속해서 반복되어 온 이야기를 목적에 맞도록 모아서 구성한 것이다. 만약 이 책의 주장이 계속해서 반복해서 전해져 내려온 것이라면, 완전히 허튼 소리는 아닐 것이다. 그게 나에게 부와 명예, 혹은 내가 소망하는 것들을 안겨줄 직접적인 원인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의지를 집중하여 목적을 달성”하는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굳이 안해볼 이유가 없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밑져도 본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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